팔로어

2009년 5월 26일 화요일

알고가면 편안한 '조문 시 바른예절'

온 세상이 노무현 전대통령의 추모 물결로 일렁이고 있습니다. 자신의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촛불처럼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지만, 세상을 바꿔보고자 늘 힘써왔기에 정치권에서도 이제 변화의 작은 바람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휴일 저녁, 노사모 회원들이 마련한 시청 앞 분향소를 찾아갔었습니다. 지나가던 20대로 보이는 연인이 방명록에 메모를 남기고 난 뒤, 국화 한 송이를 받아들고 어찌 할 바를 몰라 합니다.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던 분이 상세하게 설명을 해 줍니다. 엎드려 절을 하는 게 뭣했는지 묵념을 하고 돌아서는 청년들을 보니 조문 시 바른 예절을 알고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조문(弔問)의 본래의 뜻은 조상(弔喪)과 문상(問喪)을 뜻하는 용어로 죽은이에게 예의를 표한 후 상주에게 위문(慰問) 인사를 한다는 의미입니다.


 -조상(弔喪):망자의 죽음을 슬퍼하며 재배로써 예의를 표하는 것.

 -문상(問喪):죽음을 묻는다는 뜻으로 상주에게 위문의 인사를 하는 것.


통상 손아래 사람이나 친구의 자식 등 나이 어린 사람이 망자일 경우에는 재배를 하지 않고, 상주만 위로 하는데 이럴 경우 문상이라 하며 평상시 우리가 하는 것은 조문입니다.


▶종교별 죽음의 사전적 의미

-천주교 : 선종(善終)=임종 때 성사를 받아 큰 죄가 없는 상태에서 죽는 일.

-기독교 : 소천(召天)=하늘의 부름을 받았다는 뜻으로 죽음을 이르는 말.

-불  교 : 입적(入寂)=적막감에 들어갔다는 뜻으로 스님의 돌아가심을 뜻함.


조문절차

고인의 종교와 조문객의 신념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도 있습니다.


- 천주교, 불교 ,유교 : 헌화 또는 분향→ 절(두 번)→ 상주와 한 번 → 위로의 말

- 기독교 : 헌화→ 기도→ 유족과 인사→ 위로의 말


♣ 인사(절) 방법
1) 남자의 앉은 절


ⓐ 오른손이 위로 가도록 두 손을 맞잡는다.(평상시에는 왼손이 위로 가도록 맞잡는다.)
ⓑ 맞잡은 손을 가슴 높이까지 올린다.
(큰절의 경우 맞잡은 손을 눈높이까지 올린다.)
ⓒ 맞잡은 손으로 땅을 짚고 꿇어 앉는다.
ⓓ 이마를 손등에 대고 몸을 숙여 절한다.
(큰절의 경우 평절에 비해 몸을 조금 더 숙이고,절을 한 상태에서 조금 더 머문다.)
ⓔ 오른쪽 무릅을 먼저 세우면서 일어난다.
ⓕ 맞잡은 손을 가슴 높이까지 올렸다 내리고 약간 물러나면서 목례한다.
(큰 절의 경우 같은 손을 눈 높이까지 올렸다 내리고,같은 절을 한번 더 한다음 목례하면서 뒤로 물러난다.)
☞ 앉은 절을 하고 앉음으로써 절이 끝나는 것이다.그러나 영전에서는 앉지 않고 그대로 물러난다.
조문의 경우에는 절을 마치고 서로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인사말을 나눈다.


2) 여자의 앉은 절 (큰절)


ⓐ 왼손이 위로 가도록 두 손을 맞잡고 선다.(평상시에는 오른손을 위로 하여 잡는다.)
ⓑ 맞잡은 손을 눈 높이까지 올린다.
ⓒ 무릎을 꿇고 앉는다.
ⓓ 몸을 깊이 숙여 절한다.
ⓔ ⓒ,ⓑ와 같이 일어선 다음 다시 ⓒ,ⓓ,ⓒ,ⓑ,ⓐ의 순서로 절한 다음 목례를하면서 뒤로 물러난다.
☞ 평상시에는 다시 앉아야 하지만 영전에서는 그대로 물러난다.

 

▶ 조문 시 손의 위치

흔히 공수법이라 하는 손의 위치는 평상시 남자는 왼손이 위로 가고, 조문 시에는 오른손이 여자는 왼손이 위로 갑니다.  남녀가 공수하는 법이 다른 것은 남존여비 때문이 아니라 陽과 陰의 이치를 자세로 나타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태양을 생명의 원천으로 봤을 때 동쪽은 해가 뜨니까 陽(남자)이고 서쪽은 해가 지니까 陰(여자)으로 봐 ‘남좌여우’라는 말이 생긴 것입니다.




헌화 및 분향 시 유의할 점

헌화는 꽃을 드린다는 의미에서 꽃봉오리가 조문객을 향하고, 줄기가 망자를 향하도록 하여 영정 앞에 올려놓는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헌화의식은 예전에는 없었으나 요즘에는 많이 하고 있습니다. TV에 노무현 대통령의 영정 앞에서  꽃봉오리의 위치가 분향소마다 달라 의아해 했는데 어디를 향해 놓을지는 논란이 있다고 합니다. 고인이 향을 맡도록 신위 쪽으로 꽃봉오리를 향해야 한다는 주장(성균관)과 고인이 볼 수 있도록 조문객 쪽으로 꽃봉오리를 향해야 한다는 주장(예지원)이 달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은 분향 시 양에 불을 붙인 후 손가락으로 가만히 잡아서 끄던지, 왼손을 가볍게 흔들어 끄며, 입으로 불어 끄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2009년 5월 25일 월요일

▶◀ 뿌리깊은 한나라당 텃밭에서 돋아나는 새싹

 

 


 

쉬는 토요일, 10시가 다 되어가도 아침은 고요하기만 합니다. 일주일 내내 동동걸음을 쳤던 남편과 아이들이기에 그냥 놔두고, 20년을 넘게 일찍 일어나는 일이 습관처럼 되어 있어 혼자 뚝딱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가족들이 깨어나면 먹을 수 있도록 식탁을 준비해 두고 난 뒤 TV 앞에 앉으니 뉴스특보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확인을 위해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니 마찬가지였습니다.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여보! 여보! 일어나봐 큰일 났어.”
“응. 왜? 무슨 일이야?”
“저것 봐! 노대통령이 ....노대통령이.....”

나는 말을 잇지 못하였습니다.

“뭐가 어찌 되었다는 거야?”

자막을 보고는 놀라 벌떡 일어납니다.

조금 후, 모든 방송이 중단되고 특집방송으로 노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알렸습니다.


남편은 80년대 대학을 다니면서도 운동권 학생이었습니다. 불의를 보고는 참지 못하고 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사람이라 늘 반대편에 서서 손가락질을 받곤 했습니다. 오랜 한나라당의 텃밭과도 같은 경상도 땅에서 민주당을 지지하면 그건 바로 간첩과도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말입니다. 시골 친척들이 모이는 명절에 어른들이 노대통령에게 안 좋은 말을 할 때에도, 그건 아니고 이래서 그랬다며 상세하게 설명을 해 주곤 했습니다. 그러다 나중엔 큰 소리까지 나는 사태가 벌어지곤 했었습니다. 남편은 지방 민주당사에서 몇 년 근무를 하면서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온 종일 TV 앞에서 시선을 고정한 남편의 휴대폰은 연방 울어댑니다.

이제 당을 떠나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남편이지만, 마음속에 담은 그 사랑은 어쩔 수 없었기에 전화기를 들고 기운 없는 목소리로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정치와 아무런 관련도 없었던 친구도 전화를 해

“술 한잔 할까?”

“됐어. 말이라도 고마워.”라며 전화를 끊습니다.

내가 남편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도 없었습니다. 가만히 곁에 앉아 TV를 바라보는 것 외에....


일요일 아침, 끼니도 제대로 먹지 못한 남편이

“여보! 과일 좀 사 줄 수 있어?”
“뭐하게?”
“응. 시청 앞에 임시 분양소를 차려야 할까 봐.”

그러자 남편의 핸드폰으로 노사모 회원의 메시지가 날아들었습니다. 함께 모여 분양소를 만들자고...바로 뛰어나가는 남편이었습니다.


                          ▶ 노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는 남편(가장 존경하는 분이라 늘 말을 합니다.)



 

하루 종일 먹먹한 기분으로 집에 앉아있으니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옵니다.

“여보! 아이들 데리고 한 번 와 봐!”
“그럴게.”

아들을 데리고 시청 앞에 도착하니 제법 사람들이 많이 와 있고, 저녁도 먹지 않고 서서 오시는 분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존경하던 분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그 안타까움은 분위기로 눈치 챌 수 있었습니다.


 


 

스크린으로 노대통령의 정치활동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오가는 사람들 발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집중하였습니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하얀 국화 한 송이를 받쳤습니다. 잔잔하게 웃고 나를 바라보는 그 모습에서 정치를 잘 모르는 주부이지만 눈물이 핑 도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정중하게 두 번의 절을 올리고 뒤로 물러섰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이들 손을 잡고 온 가족들의 행렬은 밤이 늦도록 끝이 없었습니다.



 



 


 

               ▶ 감히 카메라 플래시 불빛조차 내기 어려워 멀리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큰 도심에서 1~2시간을 기다려 조문한다는 것과는 대조적이지만,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멈추어 서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 아침, 입관식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그저 죽음 하나만으로도 숙연해지는 아침입니다.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으로서의 모진 삶에서 일반 소시민으로 돌아와 더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으련만, 이유야 어찌되었던 남편과 아버지로써의 책임감을 다 하며 고스란히 안고 떠나시는 분이라 더 존경할 수밖에 없다고 말을 합니다.

 


 

이념을 뛰어넘어 분향소를 찾는 시민들의 행렬로 보아 뿌리깊이 내려앉은 한나라당의 텃밭에도 새로운 싹이 돋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 모든 시름 내려놓고 편히 쉬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